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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대한민국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는 것도, 사람을 궁핍으로 몰아넣는 것도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것 / 사회권과 자유권이 서로 기대어 있다는 것은 하나를 잃고서는 다른 하나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by Rue&Lune 2011. 3. 29.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는 것도,
사람을 궁핍으로 몰아넣는 것도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것이 아닌가?

사회권과 자유권이
서로 기대어 있다는 것은
하나를 잃고서는 다른 하나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 문득 든 생각...

J씨 이야기

 처음부터 내가 살 던 집이 시설이었던 건 아니예요. 엄마가 나에게 “여섯 살”이란 걸 가르쳐 주던 20년 전쯤 경찰아저씨의 손에 이끌려 첫 시설 생활이 시작 되었어요. 그런데 그곳은 참 이상한 곳이었어요. 내 머리카락을 빡빡 밀어내고, 이상한 옷을 입히고, 밥과 반찬을 한 그릇에 모두 섞어 주더라구요. 난 뇌병변장애에 겨우 여섯 살의 작은 여자아이였는데 매일 일을 시켰어요. 1987년 새로운 시설로 가게 되었고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학교도 다니게 되었어요. 대학에도 가고 싶었지만 난 대학에 갈 수 없었어요.“니 주제에 무슨 대학이냐?”란 말에 대학을 포기하고 운 좋게 한 복지관에서 직업 훈련을 받을 수 있었지만 거기를 졸업하니 난 또다시 시설의 장애인이 되더군요. 시설에서는 늘 조심해야 했고 늘 불안했어요.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건 혼자라는 것이었어요. 그 땐 정말“난 아무것도 못하고 수용시설에 있다가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어야 되는 건가?”사람들은 시설에서 분리된 자립홈에서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그러기에 내 장애는 너무 심했나 봐요. 나도 혼자서 모든 걸 다 할 수 있어야지 자립을 할 수 있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국립재활원에 가보니 그게 아니더라구요. 활동보조도 그 때 처음 알았어요. 혼란스러웠어요. 그때 즈음 과장님이“너는 언어장애도 있고 장애가 있으니까 시설로 가라”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난 정말 시설에 가고 싶지 않았어요. 난 자유를 원했어요.

장애로 인해 부모에게 버려지고 시설에 수용되어 살아가던 J씨는 같은 또래의 다른 사람들처럼 자유롭게 외출하고 교육받고 직업을 갖고 연애하고 가정을 갖기를 원했지만 이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누릴 수 없었다. 그녀에게 뇌성마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J씨와 같이 시설에서 생활하는 경우 거주이전의 자유는 물론 자신의 뜻에 따라 종교를 갖고 종교 활동 등을 하는 자유권, 자유롭게 투표를 하거나 정치에 참여하거나 선거에 참여하는 참정권, 교육받고 노동 하고 직업을 갖고 문화생활을 즐기는 사회권, 스스로 자신의 일을 결정하는 자기결정권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막상 나오긴 했는데, 시설 선생님들의 잔소리는 끊이지 않았어요. 시설로 다시 보낼까봐 간섭하지 말라고 말도 할 수 없었지요. 늘 불안했고 시설에서 잠깐 오라고 하면 겁부터 났어요. 무슨 이야기 하려고 그러나. 혹시 시설로 보내는 건 아닌가. 그건 자립이 아니었어요. 그때쯤 헤어졌던 남자친구를 다시 만났어요. 시설에 있을 때 온라인으로 알게 된 사람인데 그 남자친구랑 결혼도 생각했는데 그의 아버지가 저를 보러 오셨다가 반대하셔서 헤어졌었거든요. 그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예요. 그렇게 남편과 집을 구하고 함께 하면서 완전한 자립을 하게 됐어요. 지금은 마음이 아주 편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저는 늘 미안하거든요. 많은 걸 해줄 수 없잖아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건 사실이예요. 지금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행복해요. 지금은 아이도 가졌어요. 예전엔 부모님을 많이 원망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어떨 수 없어서 버리셨을 거라고. 하지만 다시 만난다 해도 마음을 쉽게 열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다시 버림받는 일. 하지만 만약 엄마가 있었으면 여기 살림 장만할 때 엄마랑 고르러 다녔을 테죠? 지금은 장애여성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고 있어요. 너무 좋아요. 처음으로 얻게 된 직장이고 제 책상도 있어요. 제게는 목표가 있거든요.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을 위해 운동하고 싶은 마음. 저와 함께 시설에 있었던 언니가 있어요. 너무 너무 나오고 싶어했는데 다른 시설로 보내진 언니를 보면서 제 목표를 정했고 언니에게 말했어요.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내가 나오게 해줄 테니깐. 시설에 있는 분들이 조금만 더 용기를 가졌으면 해요. 독립을 하고 싶으면 자기가 더 열심히 싸워야 할 것 같아요. 누가 대신 할 수 없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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